I.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저는 ( )교회 ( )성도입니다. 옆에 같이하신 이분은 ( )집사님, 그리고 이분은 ( )집사님입니다. 저희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안 특징을 살펴 그것을 주제로 부드러운 대화를 잠시 가지세요. 그 분이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교회에 다닌 적이 있습니까? (네, 잠깐요)
우리교회에 나오신 적이 있습니까? (네, 전에 친구따라…)
네 그러셨어요. 우리교회에 나오셨을 때 받은 인상은 어떠하셨어요? (신자가 많고 사람들이 친절한 것 같았어요.)
네, 우리교인들이 보통 표정이 밝지요. 그것은 영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으로 봉사를 하지요. 제가 영생을 얻고 어떻게 달라 졌는지 말씀 드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여기서 자신의 개인간증을 한다. 영생을 얻은 후의 삶을 강조할 것.)
영생을 얻기 전 저는 굉장히 성격이 급했고, 신경질 적이었답니다. 특히 사소한 일로도 욕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원을 받은 후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담대함이 생겨 났습니다. 불안하던 저에게 평안함이 찾아 왔습니다. 물론 입도 많이 깨끗해 졌고요.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이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합니다.
질문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어디까지나 가정인데요, 만일 선생님이 오늘이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러시죠, 저도 수년 전 만해도 그런 확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쫓겨 바삐 살며 천국일을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갑자기 일을 당하고 나면 당황 해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내가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1서 5:13>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생 얻은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서도 그것을 아실 수가 있는지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면 먼저 이것을 좀더 분명히 해줄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가서 섰는데 그분이 선생님에게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나쁜짓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네,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을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하며 사시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지요. 제가 바로 들었습니까? (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본 순간 선생님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으면 하고 기대 했었는데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보니 과연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들어보신 것 중에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릴 수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천국은 아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II. 복음
<은혜>
성경말씀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위를 살펴보면 참으로 귀한 것들을 값없이 거저 얻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공기, 물, 무엇보다도 햇빛 등이 거저 얻고 있는 대표적인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의 영생도 거저 얻습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예 2:8-9> 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영생은 순수한 선물처럼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내고 공로를 쌓고 종교적 행위로 어떤 자격을 얻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께도 소중한 친구 분이 있으시겠죠? (네)
만약 선생님의 소중한 친구 분이 귀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선생님을 깜짝 놀래 드리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즉시 지갑을 꺼내 들고는 선물 값 얼마를 갚으려고 돈을 만지작거린다면 이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이 되겠습니까?
선물은 값없이 거저 받아야만 선물입니다. 만약 대가를 지불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 천국의 영생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저 주시는 선물을 사람들이 왜 받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성경이 인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인간은 죄인입니다.
성경 말씀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생각할 때 단지 강도, 살인, 간음 등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미를 부리거나 도둑질을 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도 죄입니다. 또 믿는 사람은 기도를 하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 등 해야 할 일을 않는 것도 역시 죄입니다. 죄는 행동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욕설, 정욕, 교만, 미움 등 생각과 말로도 짓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추어볼 때 죄 없다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네)
어떤 사람이 하루에 이런 죄를 열 번, 다섯 번 아니 딱 세 번만 짖는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걸어 다니는 천사라 해도 될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을 불친절한 생각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나님과 사람의 본분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그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선하게 산다 해도 한 달이면 90번, 일년이면 줄잡아 천 번의 죄를 짓게 됩니다. 70평생을 산다면 하나님의 법을 7만 번이나 어기는 범죄기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형사법원에서 7만 번의 범죄기록을 가진 상습범에게 어떤 벌이 내려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마 5:48>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 자신만 바르고 악하지 않게 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누구도 하나님의 법을 어김이 없이 온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 죄인은 자신을 구원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겐 그래도 선한 것들이 많아서…’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선행으로 천국 갈 수 있기를 희망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싱싱한 계란 5개와 썩은 계란 한 개를 섞어서 요리를 만들어 손님에게 정성을 다해 대접한다고 해도 섞어 냄새가 나는 그것을 손님은 결코 먹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선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실상은 부패한 생각과 죄악 된 행위가 가득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바친다 해도 그분께서 기쁘게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완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은 언제나 그에게 완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고 인간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 표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4:12>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이나 저나 또 어느 누구라도 왜 행위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시겠지요? (네, 이해가 되네요)
그러면 이렇게 죄인 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좀 더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우리를 벌하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성경에서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1, 4:8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신가 하면 하나님은 또한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성경에는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출 34:7> 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무장강도가 은행에서 500만원을 털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밀카메라가 현장을 포착하였고 은행직원과 또 다른 목격자들이 피의자를 확인하였습니다. 판사 앞에선 피의자는 범행을 부정할 수가 없어 “판사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판사님, 강도 짓을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돈도 다 돌려 드렸고 또 아무도 해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풀어 주신다면 다시는 은행을 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했을 때, 판사가 만일 그를 그냥 풀어 준다면 공정한 판사이겠습니까? 판사는 그가 지켜야 할 공정한 기준이 있습니다. 만일 그대로 그 강도를 풀어준다면 이 세상에 온전히 남을 은행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판사도 정의 때문에 범법자를 벌해야만 하는데 하물며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성경이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 이십니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라고 말씀하시고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날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성탄절이지요. 그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천국의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제 오른손에 있는 이 책이 제 삶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저의 죄와 제가 한 말과 제 마음을 스쳐간 생각과 제가 한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제 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지만 저의 죄는 미워하셔서 반드시 벌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사 53: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리의 죄가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어 무덤에 계시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선생님과 저에게 주실 천국의 처소를 마련하시려고 승천 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천국의 영생을 선생님과 저에게 선물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은혜란 말의 의미이며 천국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 된 입장에서 깜짝 놀랄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곧 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맞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무한한 질고를 당케 하셨다.” <사 53:4, 53:10 중> 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최후의 죄 값이 치러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 이 말은 흥미 있는 낱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테텔레스 타이’라는 상업용어로써 ‘완불되었다, 빚이 갚아졌다’라는 말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저의 죄 값을 다 치르셨다는 뜻이지요.
이 선물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믿음>
여기에 열쇠 꾸러미가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많은 열쇠가 있지만 저희 집 현관문을 여는 것은 오직 이 한 개뿐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그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 문을 여는 것도 이 믿음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는 구원을 얻는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도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이 아닌 것 중에 단순한 지식적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믿는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들은 그분 들이 실제로 이 땅 위에 사셨던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역사상 실재인물인 것은 믿지만 지금 그들을 위해 무엇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는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을 얻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다라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던 귀신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 8:29> 라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지식적인 믿음뿐 아니라 일시적이거나 현세적인 믿음 또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재정적인 문제로 주님을 의지할 때 그것은 재정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무슨 결정을 내리는 것을 도와 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한다면 그것은 결정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할 때 오가는 안전을 위해 여행믿음을 갖습니다. 이모든 믿음이 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들 믿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일시적인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들이 일단 해결되거나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그 문제들로 주님께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다 이생의 것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일시적인 문제들 때문에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참 믿음은 선생님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빈 의자가 하나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여기에 앉으면 제가 편하게 쉴 수 있는 의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앉지는 않고 앉으면 편하겠지 하고 생각만 한다든지 또는 저의 소지품만 내려놓는다면 저는 편히 쉬는 것이 안될 것입니다.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이 빈 의자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안기면 참 좋겠다 라고 머리로 생각만 한다면 그것이 곧 지식적인 믿음이 됩니다. 또 저는 앉지 않고 저의 경제적인 문제나 가족들의 문제나 혹은 다른 어려운 문제만 맡긴다면 이것은 일시적이거나 현세적인 믿음이 됩니다.
제가 참으로 쉬기를 원한다면 저의 이런 모든 문제들을 가진 채로 제 전체를 맡기는 것이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이같이 신뢰의 대상을 저 자신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 그분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은 마치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 내민 거지의 손과도 비유될 수 있습니다. 저는 수 년 전에 더럽고 무가치한 손을 내밀어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럴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지요.
선생님, 저가 지금까지 구원을 얻는 복음의 핵심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말씀 드렸습니다. 잘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III. 언약
어떻게 이해가 되시나요? (네)
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이 영생을 선물로 받기를 원하십니까? (네)
네, 하나님께서는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되는 만큼 다시 한번 요약하겠습니다.
영생의 선물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신뢰의 대상을 옮기셔야 합니다.
둘째로, 부활하여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셔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셔야 합니다.
구주라 함은 나를 구원하실 주님이란 뜻입니다. 성경말씀에 “볼 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라고 합니다.
네 번째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셔야 합니다. 주님이라 함은 나의 삶의 주인 된다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하며 또 앞으로의 우리 삶을 주님 뜻대로 살게 하는 방향전환이 됩니다. (아! 네)
<기도>
선생님께서 참으로 이렇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제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 인도를 해 드리겠습니다.
저가 먼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한 다음 저를 따라서 한마디씩 기도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은혜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 )선생님의 집을 방문하여 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또 잘 믿어서 앞으로는 내 뜻 대로가 아닌 주님 뜻대로 살 수 있는 복을 내려 주옵소서.
저를 따라서 한마디씩 해 주세요.
주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 제 마음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합니다.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한가운데로 오셔서,
저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저의 삶을 인도하시며,
영생을 선물로 주시옵소서.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 )선생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부터는 주님 안에서 더욱 풍성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시고, 그래서 선생님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확인>
방금 선생님께서 하신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요한복음 6장 47절에 있습니다. 읽어 주시겠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여기서 진실로 진실로 하고 두 번 반복하신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가질 것이다라고 했습니까? 가졌다고 했습니까? (가졌다고 했습니다.)
네,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으로 믿는 순간 영생을 이미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믿음으로 언제 이 세상을 떠나든지 우리는 천국의 영생을 가집니다.
이제 선생님께 다시 한번 확신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오늘 세상을 떠난다면 천국에 가실 것을 확신하십니까? (네)
만일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가 선생님을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를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셨으며 오늘이 곧 선생님의 영적 생일이 됩니다.
IV. 나아가며...
이제 선생님께서는 저희와 한 믿음의 형제가 되셨으며 저희와 함께 이 소책자에 적힌 대로 믿음이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의 성장을 위해 이 소책자를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함께 성장해요” 를 참고하여 같이 읽으며 설명한다.)
이제 형제님께서 하루에 한 장씩 요한복음을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저희들이 다시 한번 찾아뵈도 되겠습니까? (네)
혹시 형제님께서 질문이 있다든지 같이 상의할 일이 있으면 기쁘게 돕겠습니다. 형제님께서 주님을 영접하시고 영생을 얻으신 것을 정말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