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관한 신적 이치 (마 6:19-24)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경이 마음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내는 것은 풍성한 결실의 연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여러 성경 저자들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는 일관적인 주장을 합니다 (참조, 빌 2:5; 벧후 1:12-13). 사탄은 거듭났지만 깨달음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광명의 천사로 다가갑니다.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마음을 다루고 계시며 우리가 어떻게 사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야 하는가를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가르치심에 따라 우리의 생각을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바른 깨달음이 없는 영적 체험 가운데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혼동이 오는 이유는 성령의 도움없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1) 저축의 교훈 (마 6:19-21)

 

성령께서는 우리가 재물과 돈, 그리고 이 땅에 속한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다룰 때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라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진짜 보물은 하늘에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나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면 이 사람의 보물은 아직 하늘에 없습니다. 나의 동기가 옳아야 생각도 옳게 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이 말씀은 당신의 은행 계좌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뜻입니다. 상식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두십시오. 당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시련인데 그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매번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믿음대로 행하실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현실의 삶은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상식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께 확신을 두시고 그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늘의 은행 계좌에 많은 부를 쌓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믿음의 시련을 지날수록 당신의 하늘 구좌는 점점 풍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당신은 기쁨으로 고난을 통과할 수 있게 되고 당신의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그러한 엄청난 믿음의 부요함이 어디서 왔는가 하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데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죄 때문에 받아서는 안되고 오직 평범한 삶을 영적인 삶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받을 때 그 고통은 믿음의 시련이 됩니다. 평범한 삶은 그 자체가 죄악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을 주관하는 인간의 마음 속 성향은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 성향을 바꾸실 때만 우리는 꾸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일반적인 삶을 영적인 삶으로 바꾸어 낼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그 일에 집중해야 하고 연습을 해야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집중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인데도 당신이 해서는 안될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때 당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대인 관계를 잘 유지하되 당신 자신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도록 주의하십시오. 자신의 확신이나 관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뭔가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면 성경적 사고로 이치를 따져 보십시오. “이것은 주님께서 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탄이 추구하는 것인가?” 당신의 결정이 내려지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2) 구분(Division)에 대한 교훈 (마 6:22-23)

 

22절에서 우리 주님은 성령에 의하여 바르게 세워진 각 개인의 신앙 양심을 눈으로 싱징하고 있습니다. 눈은 바른 이해를 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흐르는 개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된 것은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도록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의 눈이 성하게 될 것이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우리의 모든 행동은 온전한 관계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게 되며 단순함과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그 누구도 하늘로부터 거듭나지 않으면 한가지 동기만을 갖을 수가 없습니다. 한가지 야망만을 갖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가지 동기만을 갖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한가지 동기를 지니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주의 영이 (누군가에게) 임할 때 성령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그 사람에게 한가지 동기를 주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는 성한 눈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가지 동기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며, 제자들의 한가지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어두움은 나의 관점이요 나의 권리 주장입니다. 빛은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과 어두움 사이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위험은 그 선이 흐려지는데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19).

 

(3) 분리에 대한 교훈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 세상 사람들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약간의 교묘함과 지혜와 타협(이를 정치나 외교라고 부르지요)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 주님을 엎드려 경배하라고 유혹한 것은 타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타협의 유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 되풀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이에는 하늘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분리에 대한 교훈은 우리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주제이며 주님의 가르치심 가운데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동시에 선하거나 악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자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정직이 최선의 정책입니다”라는 동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그러한 정책을 만드는 순간에 (정책이 당신의 동기가 되면서) 정직하려는 동기를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군이 되려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던지시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 무엇이 당신에게 신학교 학생이며 선교사이며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로서의 자격을 주는가? 이 대답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언제가 그 관계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수백가지의 동기들이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 시작하고 이에 우리는 지쳐서 탈진하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절대로 타협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면 이 세상은 당신을 멸시할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면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개감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이 계속 산상수훈을 지켜나가면 이 세상은 괴로워하더니 결국 당신을 미워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당신이 사업을 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였다고 합시다. 무슨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이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이 영광을 누리는 시대가 아니라 모욕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특수 전투 진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고려함이 없이 조직되어 있는 문명 시스팀을 말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나와 친한 사람이라도 주님과 비교할 때 잠깐 지나가는 그림자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시며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주님께 온 맘과 정열을 다 바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다른 관계들은 정상이 될 것입니다 (비교, 눅 14:2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하늘 아버지께 보통의 충성을 보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충성을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초기에는 극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미리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곧 영적인 삶의 초기에는 과거 세상에 속한 삶과는 완전히 다른 극단적인 삶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옛 삶을 단계적으로 청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과감히 당장 청산하게 하십니다. 그후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있게 되면 다시 우리를 사회로 보내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다시 보지만, 우리는 그 안에 속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닮아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세상과 육체와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는 것은,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