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수님의 가르침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거룩하라고 ‘가르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오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구속을 체험한 자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예수님께는 가르침이 우선이 아니다. 주님께 우선된 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유전적 형질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이를 위해 오셨다. 산상수훈은 이 유전 형질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설명해 놓은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삶이 얼마나 비대해졌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산상수훈을 읽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가르침을 대하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딘지를 알게 된다.
산상수훈의 교훈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성령께서 그 내용들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가져오실 때까지 그 교훈들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의 교훈들을 생각나게 하시면 나는 나의 실제적인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당할 수 있도록 중생으로 받은 그 성향을 발휘해야 한다.
주님께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찬-반을 논한다.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도 결코 의로울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 명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순종할 수 있을 때에야 의로울 수 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은 당신이 순종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순종하는 순간 모든 것을 의미한다.
주님이 가르치신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라. 그후 당신의 온 힘을 다해 그 내용을 주장하고 또 주장하라.
어떤 행동 원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 믿음의 부패가 따른다.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성령께서 주의 가르침을 당신에게 적용하실 수 있도록 하라.
주인께 드려야 할 충성을 주인의 가르침으로부터 만들어진 어떤 행동 원칙에 충성하는 것으로 대치하지 말라.
오류 없는 행동 원칙들은 없다. 오직 오류가 없으신 인격만이 계실 뿐이다.
나의 현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주를 향한 나의 모든 헌신은 하나님께 도리어 모독이 된다.
영적인 일들은 성실하게 행하면서 덜 영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그러한 경향이 없도록 하라. 즉, 기도 모임에는 열심을 내면서 공동체를 위해 청소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그러한 자세를 갖지 말도록 하라.
주님의 가르침 중에 어떤 한 부분을 취하여 하나님 자리에 두지 않도록 주의하라. 어떤 부분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마태복음 5:48절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기준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완전)하라.” 유머의 감각을 가지고 “나는 완전하다”라는 의식을 붙들도록 하라. 바로 그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다.
예수님의 종교는 영성에 의해 승화된 도덕이다. 우리는 마음 속 깊은 동기까지 도덕적으로 옳아야 한다.
우리 주님은 의로운 사람들이 해야 하는 모든 선행을 우리가 다 행할 것을 부탁하시지만, 완전히 다른 동기를 가지고 행하길 기대하신다 (참조, 마 5:20).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인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게 되면 성령은 세상이 그를 더 철저히 흠잡도록 내버려 두신다. 그러나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철저한 점검을 받을수록 더욱 온전하고 강건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현재의 문명화된 조직적 기관들은 지독할 정도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대한다.
조직된 기관이 자체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영적인 능력은 사라지고 자체 성장만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성령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 점차 조직화되어 영적인 황금률에서 벗어나게 될 때 결국 하나님께서 부숴야 하는 말라비틀어진 돌처럼 굳어진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우리 주님은 아무 것도 폐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기존의 체계에 그 체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통제 법칙을 더하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자연인에게 지독할 정도의 모독을 준다. 이 사실을 깨달을 만큼 주님께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주님을 만난 적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당신은 혼돈의 지옥에 있게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참조, 마 5:21-26).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연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대경실색하게 만든다.
진리가 임할 때 나의 처음 반응은 그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진리를 알려주시면서 “네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남들을 비난하고 싶어하고 남들을 채찍으로 매질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을 점검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점검하라. 만일 당신의 눈 속의 들보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코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지 못할 것이다 (마 7:3-4).
사람은 다음과 같은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 하나는 짐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주님의 교훈의 확실한 의도를 알면서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눅 11:46).
초자연적인 거듭남이 없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적용될 수 없다. 오직 절망만 자아낼 뿐이다.
불구의 삶과 성숙한 삶에 대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충분하게 인식되지 못하여 왔다. 당신이 불구가 될 만큼 열광적이지 않으면 절대로 성숙할 수 없다 (참조, 마 5:29-30, 48).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1). 만일 당신이 성도라면 주님은 당신의 걸음에 속도 제한을 두실 것이다.
기독교의 기준에 전혀 못 미치는 삶을 사는 공동체를 가르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대할 때 우리는 그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윤리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타락한 군중 들 사이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내 의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나는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로써 행동해야 한다.
The Teaching of Jesus
Our Lord did not come to this earth to teach men to be holy: He came to make men holy, and His teaching is applicable only on the basis of experimental Redemption.
The teaching of Jesus is not first; what is first is that He came to give us a totally new heredity, and the Sermon on the Mount describes the way that heredity will work out.
A good way to find out how much stodge there is in our spiritual life is to read the Sermon on the Mount and see how obtuse we are to the greater part of what Jesus Christ taught.
There is a calm deliberation about the injunctions in the Sermon on the Mount; we are not asked to obey them until the Holy Spirit brings them to our remembrance, when He does, the question is, will I exercise the disposition given me in regeneration and react in my actual life in accordance with the Mind of Christ?
Weighing the pros and cons for and against a statement of Jesus Christ’s means that for the time being I refuse to obey Him.
We are never justified in taking any line of action other than that indicated by the teaching of Jesus and made possible for us by the grace of God.
Our Lord’s teaching does not mean anything to a man until it does, and then it means everything.
Make your mind sure of what our Lord taught, and then insist and re-insist on it to the best of your ability.
Distortions of belief come because principles are put in the place of Jesus Christ. I must have a personal relationship to Him first, and then let the Holy Spirit apply His teaching.
Nothing must switch the disciple’s loyalty to his Lord by loyalty to principles deduced from His teaching.
There are no infallible principles, only an infallible Person.
All my devotion is an insult to God unless every bit of my practical life squares with Jesus Christ’s demands.
Beware of being negligent in some lesser thing while being good in some spiritual thing, e.g., you may be good in a prayer meeting while not good in the matter of cleaning your boots. It is a real peril, and springs from selecting some one thing our Lord taught as our standard instead of God Himself.
Matthew 5:48 is the standard for the Christian: “Ye therefore shall be perfect,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rv). Size yourself up with a good sense of humour—“me, perfect!” That is what Jesus Christ has undertaken to do.
The religion of Jesus is morality transfigured by spirituality; we have to be moral right down to the depths of our motives.
It cannot be too often emphasised that our Lord never asks us to do other than all that good upright men do, but He does ask that we do just those same things from an entirely different motive (see Matthew 5:20).
We should make less excuses for the weaknesses of a Christian than for any other man. A Christian has God’s honour at stake.
When a man is regenerated and bears the Name of Christ the Spirit of God will see to it that he is scrutinised by the world, and the more we are able to meet that scrutiny the healthier will we be as Christians.
Civilised organisations were never more deadly opposed to the teaching of Jesus than in the present age.
Whenever an organisation begins to be conscious of itself, its spiritual power goes because it is living for its own propaganda. Movements which were started by the Spirit of God have crystallised into something God has had to blight because the golden rule for spiritual work has been departed from. (See John 12:24).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 (Matthew 5:17). Our Lord was not anti anything; He put into existing institutions a ruling principle which if obeyed would reconstruct them.
If you have never been brought close enough to Jesus to realise that He teaches things that grossly offend you as a natural man, I question whether you have ever seen Him.
Immediately you get out of touch with God, you are in a hell of chaos. That is always in the background of the teaching of Jesus. (Cf. Matthew 5:21-26). That is why the teaching of Jesus produces such consternation in the natural man.
Whenever a truth comes home to me my first reaction is to fling it back on you, but the Spirit of God brings it straight home, “Thou art the man.” We always want to lash others when we are sick with our own disobedience.
The scrutiny we give other people should be for ourselves. You will never be able to cast out the mote in your brother’s eye unless you have had a beam removed, or to be removed, from your own eye (Matthew 7:3-4).
It is perilously possible to do one of two things—bind burdens on people you have no intention of helping them lift, or placidly to explain away the full purport of our Lord’s teaching (see Luke 11:46).
Divorced from supernatural new birth the teaching of Jesus has no application to me, it only results in despair.
Our Lord’s teaching about the maimed life and the mature life has not been sufficiently recognised. You can never be mature unless you have been fanatical. (See Matthew 5:29-30, 48).
“Whosoever shall compel thee to go a mile, go with him twain” (Matthew 5:41). If you are a saint the Lord will tax your walking capacity to the limit.
It is a slow business teaching a community living below the Christian level, I have to act according to the Christian ethic while not ignoring the fact that I am dealing with a community which lives away below it. The fact that I live with a degenerate crowd does not alter my duty, I have to behave as a disciple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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