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구속 (Redemption)
하나님은 우리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부탁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을 부탁하신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것이 없음을 믿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구속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미완성을 덮으신다.
사람이 구원을 체험할 때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아니다. 사람의 믿음을 구원의 바탕에 두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을 선포하는 주관 신학(a subjective theology)은 위험하다. 복음은 구속의 절대성에 기초한다.
구속의 위대함은 무엇보다 사람의 죄악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죄를 다루는데 있다. 사회의 문제아들에게 가서 그들을 구출하는 일도 매우 귀중한 일이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는 아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장 선한 사람들에게도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그들의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님께 양도하는 것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복음에 있어서 위대한 점은 복음은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장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행동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전혀 알 지 못했다.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위해 일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성령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자세를 가지라.
하나님은 구원과 관련해서는 차등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인격에 대해서는 엄격한 차등을 두신다. 각 사람마다 순종에 의해 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이 크게 다를 것이다.
구원은 구속을 통한 은혜의 선물이다. 하늘 나라에서의 지위는 선물이 아니라 구원 받은 각 사람이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구원과 성화는 다르며, 구속 받은 사실과 구속 받은 사람으로써 자신을 입증하는 것은 다르다. 구원을 받았어도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야비한 삶을 살 수 있고, 혹은 유한한 육체를 통해 주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을 구하라고 제자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속주의 생명에 조화가 되는 삶을 사는 “제자들을 만들라”고 보내셨다.
전도의 방법 중에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부추기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구원을 장래의 형벌을 피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보험으로 보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로부터의 구원”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 구원의 기쁨은 내 자신의 유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료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의 기쁨이어야 한다.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구적인 기반은 성결이나 개인적인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다. 이 용서의 기반 저변에는 무한하게 위대한 험악한 십자가 사건이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경이 말하는 엄청난 단어인 “용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우리의 순종에 대한 개념은 죄로 인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순종을 “배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은 죄가 없었기 때문에 “순종을 배운” 유일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분은 아들이 되기 위해서 순종을 배운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아들로서 오셔서 순종하셨다.
우리 주님은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셨다. 고결한 성품의 충동에 의해서 대속 제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사람을 구속하실 수 있다는 자아-희생의 완벽한 의식 가운데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이 되셨다.
연합을 추구하는 일에 미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신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요 17:22). 그러나 오늘날의 성향처럼 구속을 무시하는 바탕 위에서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거듭남을 통해 영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는 예수님의 구속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의 장소”에 살게 될 때 구속의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세상을 구속하셨다는 계시에 근거한다 (롬 5:12, 20-21). 구원의 체험은 사람의 거듭남을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향, 즉 성령께서 그에게 들어가신 것을 뜻한다.
구속에 대한 믿음은 자신을 먼저 항복해야 하기 때문에 가지기가 어렵다.
당신은 인간의 죄로 인해 파생된 모든 결과들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통해 다시 바르게 될 것을 믿는가?
구속은 불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실체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구속은 성령의 살아있는 효력에 의해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이 된다.
Redemption
God does not ask us to be good men and women He asks us to understand that we are not good; to believe that “none is good, save one, even God”† (rv), and that the grace of God was manifested in the Redemption that it might cover the incompleteness of man.
When a man experiences salvation it is not his belief that saves him; teaching goes wrong when it puts a man’s belief as the ground of his salvation. Salvation is God’s “bit” entirely.
The danger is to preach a subjective theology, something that wells up on the inside. The Gospel of the New Testament is based on the absoluteness of the Redemption.
The great thing about the Redemption is that it deals with sin, i.e., my claim to my right to myself, not primarily with man’s sins. It is one of the most flattering things to go and rescue the degraded, one of the social passions of mankind, but not necessarily the most Christian: it is quite another thing to tell men who are among the best of men that what Jesus Christ asks of them is that they give up the right to themselves to Him.
The great thing about the Gospel is that it should be preached. Never get distressed over not seeing immediate results. No prophet of the Old Testament, or apostle of the New (or saint of the present day), ever fully understood the import of what he said or did, hence to work for immediate results is to make myself a director of the Holy Ghost.
God is no respecter of persons†††† with regard to salvation, but He has a tremendous respect for Christian character. There are degrees in glory which are determined by our obedience.
Salvation is a free gift through the Redemption; positions in the Kingdom are not gifts, but attainments.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salvation and saintliness, between being redeemed and proving myself a redeemed man. I may live a life of sordid self-seeking on the basis of the Redemption, or I may live a life which manifests the life of the Lord Jesus in my mortal flesh.
Jesus Christ did not send out the disciples to save souls, but to “make disciples” (rv), men and women who manifest a life in accordance with the life of their Redeemer.
A charge made against some methods of evangelism is that self-interest is made the basis of the whole thing: salvation is looked upon as a kind of insurance scheme whereby I am delivered from punishment and put right for heaven. But let a man experience deliverance from sin, and his rejoicing is not in his own interests, but that he is thereby enabled to be of use to God and his fellow men.
The bedrock permanent thing about Christianity is the forgiveness of God, not sanctification and personal holiness—the great abiding thing underneath is infinitely more rugged than that; it is all the New Testament means by that terrific word “forgiveness.” “In whom we have our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Ephesians 1:7).
The virtue of our Redemption comes to us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Son of God—“though He were a Son, yet learned He obedience by the things which He suffered . . .” (Hebrews 5:8). Our view of obedience has become so distorted through sin that we cannot understand how it could be said of Jesus that He “learned” obedience; He was the only One of whom it could be said, because He was “without sin.” He did not learn obedience in order to be a Son: He came as Son to redeem mankind.
Our Lord came to make atonement for the sin of the world, not by any impulse of a noble nature, but by the perfect conscious Self-sacrifice whereby alone God could redeem man.
Beware of the craze for unity. It is God’s will that all Christians should be one with Him as Jesus Christ is one with Him (John 17:22), but that is a very different thing from the tendency abroad to-day towards a unity on a basis that ignores the Atonement.
Until we have become spiritual by new birth the Atonement of Jesus has no meaning for us; it only begins to get meaning when we live “in heavenly places in Christ Jesus.”
Salvation is based on the revelation fact that God has redeemed the world from the possibility of condemnation on account of sin (Romans 5:12, 20-21): the experience of salvation means that a man can be regenerated, can have the disposition of the Son of God put into him, viz., the Holy Spirit.
Belief in the Redemption is difficult because it needs self-surrender first.
Do I believe that everything that has been touched by the consequences of man’s sin is going to be put absolutely right by God through the Redemption?
Redemption is the Reality which alters inability into ability.
The mighty Redemption of God is made actual in my experience by the living efficacy of the Holy 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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