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설교 (Preaching)

개인 간증은 누군가가 손으로 당신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것과 같다. 당신이 복음을 선포하려면 이 보다 더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그의 메시지의 부분이어야 하며 메시지와 섞여야 한다. 성령의 세례는 제자들에게 이 같은 역사를 일으켰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의 살아있는 서신들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단지 주님의 생애의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인간 축음기가 아니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성스럽게 선다면 주님은 당신의 설교를 언어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되는 메시지로 만드실 것이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당신이 성찬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당신과 연합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의 설교는 울리는 꽹가리가 될 것이다. 이런 설교는 회개와 애통의 과정을 지나지 않은 아무런 희생 없는 설교다.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오게 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에 사람을 하나님께 데려가라. 구속에 대한 설명은 아무도 하나님께로 이끌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높일 때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오게 될 것이다 (참조, 요 12:32).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로 사람들 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설교자의 의무는 회중에게 죄를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도 아니다. 설교자의 의무는 단지 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게 된다.

그 누구도 진리를 들은 후에 전과 같을 수 없다. 관심이 없다거나 모든 것을 다 잊은 것처럼 말할 수 있어도 어느 순간 그 진리는 그의 의식 속으로 떠오르면서 그의 마음의 평화를 깨뜨린다.

기독교 사역의 가장 큰 함정은 “당신이 대화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각 사람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주의 메시지에 충성해야 한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방법으로 주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다.

진리의 실체를 설교하며 그대로 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의 어떤 특별한 부분만 선호한다. 이러할 때 사람들은 도량이 좁고 완고해 진다. 종교적으로 자신들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틀렸다고 완강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주님이 원치 않는 내용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만일 사람들에게는 거룩해야 한다고 설교하면서 자신은 거룩하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설교 자격을 박탈하실 것이다. 만일 설교자가 자신이 전한 메시지대로 살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의 메신저이기 때문에 더더욱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전한 메시지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먼저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메시지는 위험하다.

설교의 내용과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감정 표현만 잘하는 설교자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 설교자의 삶은 그의 말보다 더 힘있게 말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타협과 정욕과 세속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죄성을 꾸짖는다면 그러한 설교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은 대단히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의 매일의 평범한 삶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내는 것은 어렵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위선이 없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위선자들이 있다.

영적 통찰력은 청중을 하나님께로 이끈다. 설교자의 교묘함은 청중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잔꾀는 언제나 천박하고 얕은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번드르르한 성경 해석은 언제나 그르게 나아간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은 겉보기에 번드르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사함을 주의하라. 설교자가 간사한 것은 위선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조급하지 말라. 당신이 진리의 기쁨을 깊게 누리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인상적인 설교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속죄의 신비를 믿는 위대한 믿음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믿음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물론 설교자의 인상적인 표현과 모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뚜렷한 역사에 의해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역사를 일으킨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멋진 사상이나 우렁찬 연설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면 사탄의 승리는 확실해진다. 이때 당신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필요하다면 바보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라. 이는 설교자를 위한 황금률이다. 즉, 우리는 세상 지혜가 보기에 어리석은 것을 전해야 한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을 어리석게 보며 하나님은 세상 지혜를 어리석게 보신다 (참조, 고전 1:18-25). 우리가 잘못되는 때는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변론하려고 하는 때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서면 반드시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때 자신을 변호하려고 입을 열지 마라. 그럴 경우 얻을 수 있는 지점에서 잃게 될 것이다. 무시와 모욕이 오면 받으라. 그리고 “주 안에서 약한 자”가 되라.

믿음과 삶의 체험으로 당신의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어떤 추측을 하지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다. 한편, 정말로 당신의 것이 된 것이 있다면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때 ‘바보’가 될 준비를 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선포하지 않는 설교를 원한다. “사랑의 하나님만 설교하고 거룩한 하나님은 설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신다는 설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요구는 죄 많은 죄인들보다 철저하게 지적이고 교양 있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모독이 된다. 설교에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설교를 통해 사람의 양심 깊은 곳을 탐지하셔서 “그렇다. 너는 잘못되었다”라고 크게 외치시게 하는 것이다.

실체를 접하는 설교자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청중들의 궤변을 벗겨 놓는다. 성령께서 이러한 역사를 일으키실 때 가장 먼저 가책을 받는 사람들은 가장 선해 보이는 자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심리학적 법칙이 있다. 호소의 조건은 매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끌고자 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그들을 오게 할 수 없다. 그들이 스스로 와야 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우리는 죄와 구원에 대해 그럴 듯하게 말하지만, 오늘날 사용되는 대부분의 신학적 용어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의 깊은 영적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진리가 제시될 때 당장 그 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부흥을 통해 하나님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무모하게 일을 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면 당장 하나님을 망각하고 헛된 열정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 주님의 일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다른 일로 당신 자신을 지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진리를 제시할 때 조미료를 첨가해야 한다는 마귀의 음성을 주의하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6). 상식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을 알 때 우리는 육신을 따라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상식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주님의 계시를 마음에 둘 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세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거의 없다.

“여기까지는 괜찮지만 더 이상은 안됩니다.” 이처럼 설교자가 공적으로 믿음에 서지 못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효력을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다. 만일 당신이 개인적으로 내어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 주님을 섬기려는 사역자가 되려면 철저하게 찢겨진 빵이 되고 부어진 포도주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인 당신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 때 회중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느낀다. 그러나 주를 의지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회중들에게 천박한 인상을 남긴다.

무의식 가운데 교훈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명령 조로 의식 가운데 남을 교훈하고 있다면 이는 당신이 영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종교적이라서 가까이 하기에 두려운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향기가 전혀 없는 그러한 종교 생활을 주의하라.

두 가지를 기억하라. 설교는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나타낸다. 그러나 대다수는 자연스러워질 때 경망스러워진다. 이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설교 중에 말을 잇지 못할 경우 낙심하지 말라. 실어증에 대한 유일한 치료는 긴장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말이 막힐 때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라.

설교를 한 후에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설교 후의 기분을 무시하라.

공중 대표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회중을 대신하여 기도할 수 있는지를 배우라. 두개의 강 줄기가 당신을 통해 흐르도록 하라. 하나는 하나님의 강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의 관심사의 강이다. 기도를 통해 회중을 가르치려 하거나 교리적인 기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설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임하는 말씀이다. 기도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적절한 위치는 회중의 한 사람으로써 사람들 가운데 서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단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신학을 던지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리이다.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가도록 하라. 절대로 어떤 권세 있는 다른 어떤 사람이 보낸 것처럼 건방지게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떠한가? “오늘 하루를 이러 저러한 계획에 따라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계획들이 어긋난다면 당신의 심령은 어떠한가? 혹시 상심 가운데 다 집어 던지고 싶어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계획은 하나님을 고려한 것이 아니며 전혀 영적이지 않은 것이다. 단지 순수히 기계적이다. 위대한 삶의 비결은 언제나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비결을 배우는 것이다.

지칠 때마다 요한복음 21:15-17절에서 힘을 얻으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 목양의 모든 비결은 당신의 마음을 통해 누군가가 구세주께 가는 것이다.

주께서 친히 알려주신 하나님의 진리를 더 간단하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라.

복음을 선포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신다. 즉, 구속을 바탕으로 한 믿음을 창조하신다.

사람들이 “간단한 복음을 전하라”고 말할 때 “간단한 복음”이라는 뜻이 사람들이 듣고 실컷 잠잘 수 있는 메시지를 의미한다면, 하나님께서 가능한 빨리 그러한 침체된 영혼들에게 충격을 주시는 것이 그들의 영혼에게 더 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설교가 회중에게 마음의 결단을 내리는 자리까지 이어지지 못하거나 삶의 발걸음 및 생각을 조심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다음 두 이유 중에 하나다. 설교자가 가짜이던지 아니면 회중이 더 나아지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를 즐거워하고 겸허하게 믿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설교는 지루할 수 있어도 복음을 절대 그럴 수 없다.

 

Preaching

A personal testimony feeds you from hand to mouth; you must have more equipment than that if you are to preach the Gospel.

The preacher must be part of his message, he must be incorporated in it. That is what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 did for the disciples. When the Holy Ghost came at Pentecost He made these men living epistles of the teaching of Jesus, not human gramophones recording the facts of His life.

If you stand true as a disciple of Jesus He will make your preaching the kind of message that is incarnate as well as oral.

To preach the Gospel makes you a sacrament; but if the Word of God has not become incorporated into you, your preaching is “a clanging cymbal” (rv); it has never cost you anything, never taken you through repentance and heartbreak.

We have not to explain how a man comes to God, instead of bringing men to God, that hinders; an explanation of the Atonement never drew anyone to God, the exalting of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does draw men to God (see John 12:32).

Remember, you go among men as a representative of Jesus Christ.

The preacher’s duty is not to convict men of sin, or to make them realise how bad they are, but to bring them into contact with God until it is easy for them to believe in Him.

No man is ever the same after listening to the truth, he may say he pays no attention to it, he may appear to forget all about it, but at any moment the truth may spring up into his consciousness and destroy all his peace of mind.

The great snare in Christian work is this—“Do remember the people you are talking to.” We have to remain true to God and His message, not to a knowledge of the people, and as we rely on the Holy Spirit we will find God works His marvels in His own way.

Live in the reality of the Truth while you preach it.

Most of us prefer to live in a particular phase of the Truth, and that is where we get intolerant and pigheaded, religiously determined that everyone who does not agree with us must be wrong. We preach in the Name of God what He won’t own.

God’s denunciation will fall on us if in our preaching we tell people they must be holy and we ourselves are not holy. If we are not working out in our private life the messages we are handing out, we will deepen the condemnation of our own souls as messengers of God.

Our message acts like a boomerang; it is dangerous if it does not.

A good clear emotional expression contains within it the peril of satisfactory expression while the life is miles away from the preaching. The life of a preacher speaks louder than his words.

There is no use condemning sensuality or worldly-mindedness and compromise in other people if there is the slightest inclination for these in our own soul.

It is all very well to preach, the easiest thing in the world to give people a vision of what God wants; it is another matter to come into the sordid conditions of ordinary life and make the vision real there.

Beware of hypocrisy with God, especially if you are in no danger of hypocrisy among men.

Penetration attracts hearers to God, ingenuity attracts to the preacher. Dexterity is always an indication of shallowness.

A clever exposition is never right because the Spirit of God is not clever. Beware of cleverness, it is the great cause of hypocrisy in a preacher.

Don’t be impatient with yourself, because the longer you are in satisfying yourself with an expression of the Truth the better will you satisfy God.

Impressive preaching is rarely Gospel-preaching: Gospel-preaching is based on the great mystery of belief in the Atonement, which belief is created in others, not by my impressiveness, but by the insistent conviction of the Holy Spirit.

There is far more wrought by the Word of God than we will ever understand, and if I substitute anything for it, fine thinking, eloquent speech, the devil’s victory is enormous, but I am of no more use than a puff of wind.

The determination to be a fool if necessary is the golden rule for a preacher.

We have to preach something which to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If the wisdom of this world is right, then God is foolish; if God is wise,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see 1 Corinthians 1:18-25). Where we go wrong is when we apologise for God.

If you are standing for the truth of God you are sure to experience reproach, and if you open your mouth to vindicate yourself you will lose what you were on the point of gaining. Let the ignominy and the shame come, be “weak in Him.”

Never assume anything that has not been made yours by faith and the experience of life; it is presumptuous to do so. On the other hand, be ready to pay the price of “foolishness” in proclaiming to others what is really yours.

People only want the kind of preaching which does not declare the demands of a holy God. “Tell us that God is loving, not that He is holy, and that He demands we should be holy.” The problem is not with the gross sinners, but with the intellectual, cultured, religious-to-the-last-degree people.

All the winsome preaching of the Gospel is an insult to the Cross of Christ. What is needed is the probe of the Spirit of God straight down to a man’s conscience till his whole nature shouts at him, “That is right, and you are wrong.’

It is the preacher’s contact with Reality that enables the Holy Spirit to strip off the sophistries of those who listen, and when He does that, you find it is the best people who go down first under conviction.

A great psychological law too little known is that the line of appeal is conditioned by the line of attraction. If I seek to attract men, that will be the line on which my aggressive work will have to be done.

To whom is our appeal? To none but those God sends you to. You can’t get men to come; nobody could get you to come until you came.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 . .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Many of the theological terms used nowadays have no grip, we talk glibly about sin, and about salvation; but let the truth be presented along the line of a man’s deep personal need, and at once it is arresting.

Some of us are rushing on at such a headlong pace in Christian work, wanting to vindicate God in a great Revival, but if God gave a revival we would be the first to forget Him and swing off on some false fire.

“ . . . not slothful in business,” i.e., the Lord’s business. Don’t exhaust yourself with other things.

Beware as of the devil of good taste being your standard in presenting the truth of God.

“Wherefore henceforth know we no man after the flesh” (2 Corinthians 5:16); that is the way we do know men—according to our common-sense estimates. The man who knows God has no right to estimate other men according to his common-sense judgment, he has to bring in revelation facts which will make him a great deal more lenient in his judgment. To have a little bit only of God’s point of view makes us immensely bitter in our judgment.

Beware lest your reserve in public has the effect of God Almighty’s decree to the sea—“Hitherto shalt thou come, but no further.” I have no business in God’s service if I have any personal reserve, I am to be broken bread and poured-out wine in His hands.

If you are living a life of reckless trust in God the impression given to your congregation is that of the reserve power of God, while personal reserve leaves the impression that you are condescending to them.

We should give instruction unconsciously; if you give instruction consciously in a dictatorial mood you simply flatter your own spiritual conceit.

Have you never met the person whose religious life is so exact that you are terrified at coming near him? Never have an exercise of religion that blots God clean out.

Remember two things: be natural yourself, and let God be naturally Himself through you. Very few of us have got to the place of being worthily natural, any number of us are un-worthily natural, that is, we reveal the fact that we have never taken the trouble to discipline ourselves.

Don’t be discouraged if you suffer from physical aphasia, the only cure for it is to go ahead, remembering that nervousness overcome is power.

Beware of being disappointed with yourself in delivery; ignore the record of your nerves.

Learn to be vicarious in public prayer. Allow two rivers to come through you: the river of God, and the river of human interests. Beware of the danger of preaching in prayer, of being doctrinal.

When you preach, you speak for God, and from God to the people; in prayer, you talk to God for the people, and your proper place is among the people as one of them. It is to be a vicarious relation, not the flinging of theology at their heads from the pulpit.

Always come from God to men; never be so impertinent as to come from the presence of anyone else.

How do interruptions affect you? If you allot your day and say, “I am going to give so much time to this, and so much to that,” and God’s Providence upsets your time-table, what becomes of your spirituality? Why, it flies out of the window! it is not based on God, there is nothing spiritual about it, it is purely mechanical. The great secret is to learn how to draw on God all the time.

Whenever you are discovered as being exhausted, take a good humiliating dose of John 21:15-17. The whole secret of shepherding is that someone else reaches the Saviour through your heart as a pathway.

Beware of making God’s truth simpler than He has made it Himself.

By the preaching of the Gospel God creates what was never there before, viz., faith in Himself on the ground of the Redemption.

People say, “Do preach the simple Gospel,” if they mean by “the simple Gospel” the thing we have always heard, the thing that keeps us sound asleep, then the sooner God sends a thrust through our stagnant minds the better.

If any man’s preaching does not make me brace myself up and watch my feet and my ways, one of two things is the reason—either the preacher is unreal, or I hate being better.

• A joyous, humble belief in your message will compel attention.

• Sermons may weary, the Gospel never does.